드디어 인문학 세 번째
조금 더 편하게 일상적으로 파고드는 인문학으로 만나보는 시간 속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요러 분들이 잊고 있덨던 교과서 속의 철학 책 속의 인문학자들을 소개해 드리는 이지영샘과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3번째 게스트분으로 부산출신 군장학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늦은 나이로 방통대 국문과 편입 영화[친구]를 찍은 직후에 학위를 취득한 배우 김광규 님과 함께 한 이야기로 시작을 할까 합니다.
지영샘: 예능도 잘 하시고 연기도 잘하시고 ,
광규님: 공부를 못해가지고 공부도 잘 하시고 미인이시고 부럽습니다. 우리 엄마가 제가 어렸을 때 늘 하던 말,,,,,,
광규 어머니: "옆집 지영이는 자습서도 안 사줬는데도 1등 하더라"
광규님: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했는데, 딱 나타난 거죠!!
지영샘: 네 저도 폐휴지함에서 선배들이 버린 교재에 이름 써져 있는 교재 가져와서 풀었어요.
지영샘: 제가 광규님 오신다 해서 인터넷검색을 한 번 했었는데, 정말 많은 직업이 있으셨더라고요?
택시 운전기사도 하고, 택시뿐만 아니라 그 많은 직업에 도전하고 그 배우의 꿈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나중에 만학도로 대학에 들어가셨더라고요.
광규님: 공부와는 담을 쌓고 중. 고등학교 때는 그의 꿈이 없었어요! 무조건 돈을 벌어야 된다라는 생각,,,,,,
집에 도움이 돼야 한다. 그런 생각밖에 안 했던 같아요. 제가 국방부 장학생으로 군대를 5년 동안
직업군인을 하고 제대하자 말자 또 이제 돈을 모아야겠다. 해서 바로 택시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뭐 이것저것 하다가 이제 서른 살쯤에 이제 돈을 떠나서 내가 딱 한 번 해보고 싶은 거 해 보고 다시 생각을
해 보자고 했던 게 우연히 배우가 돼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죠.
지영샘: 근데 정말 어쨌든 전 국민에게 크게 알려졌던 그 어떤 순간이 <친구> 영화 속에 나왔던 장면이었어요.
그 장면이 아직까지도 많은 회자가 되고 있으시잖아요.
광규님: 아!!! 그걸로 지금까지 먹고살고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전교에서 전국에서 제일 많이 맞았고
전국에서 가장 많이 "아버지 뭐 하시노"를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뭐 수업료 안 낸다고 할 때에도,, 그래서 그 한을 풀려고 했는지 어쨌든 그 역할이 저한데 들어와서
그걸로 한 20년째 먹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1999년에 서울에 올라와 그때 주식으로 돈을 다 날리고 돈 없이 압구정 고시원에 왔었는데,,,,,,
그때 유명했던 이야기 중에 ''''' 성공하고 싶어? 그럼 절벽 끝에 너를 세워라!!
그래서 제거가 그때 한강 다리에 엄청 섰었어요!!! 양화대교 올라가고 너무 힘들어서 갔죠!
그런데 죽을 용기는 안 나더라고요.
지영샘: 주식 잃었을 때 그 후로 주식을 안 하셨나요?
광규님: 하죠 안 한다고 하는데 돈이,........... 네이버 삼성전자
지영샘: 삼성전자 몇 층이세요?
광규님: 아 제가 옛날에 9층에서 했다가 ,.. 9층에 누가 그러더라고요. 10층간다 그러길래 9층에서 해봤거든요.
지영샘: 그래요! 10만 전자 그랬잖아요!! 저 87층요
광규님: 저 92층이요,.......
지영샘: 나보다 높은 사람 처음 봐.
광규님: 92층에서 떨어져 가지고 또 최근에 얼마 전에 75층에 들어갔어요.. 또 이제 간다고 반도체 간다고
오 이번에 5만 전자가 깨졌잖아요. 내가 사면 떨어지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잘 되려고 이런 시련이 오나
광규님: 제가 그랬어요. 주식도 다 날리고 압구정 고시원에 살았을 때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오디션도 계속 떨어지고 몸도 아프고,
(눈시울을 적시며) 병원 앞에서 병원비가 없어서 운 적이 있거든요. 고시원에 자면서 이 생각을 했어요.
하 " 내가 얼마나 큰 인물이 되려고 이런 시련을 주나" 어 진짜 나중에 이거 자서전 잘 팔리겠는데,,,,,
문득 그 생각한 적이 있어요.
지영샘: 그게 광규님이 국민들이게 사랑받는 그런 배우가 되신 이유인 것 같아요.
광규님: 그때쯤에 성공에 관한 책을 읽어보니까? 그기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이제 성공으로 가는 첫 길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막 압구정에서 저를 안아주고
얼마나 잘 되려고 이런 시련이 오나 그랬는데, 또 전세 사기로 또 와서 그래가지고 한 세 달째 제 뺨을
얼마나 때렸는지,,, 진짜 12년 동안 출연료 3만 원, 5만 원 받아서 모은 돈으로 제가 전세를 들어갔거든요..
아 그래서 그때 또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아니 얼마나 큰 인물이 되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섰는데,
지영샘이 말씀하신 게 방송으로 딱 보니까 ,.... 아 그때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신 적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지영샘: 제가 제자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예요.
"신은 인간에게 늘 선물을 줄 때"
"포장지에 싸서 준다" ----- 시련이라는 이름의 포장지
"작은 선물에는 작은 포장지가"
"큰 선물에는 큰 포장지가 싸여 있다."
"혹시라도 자신의 인생에 큰 시련을 만나거든"
"신이 주기 위한 큰 포장지를 뜨고 나면"
"얼마나 큰 선물을 받을지 자신을 되돌아보아라"
광규님은 실제로 실천을 하신 거네요
또 제가 수업 중에 많이 언급하는 맹자의 말이 있어요.
"하늘이 장차 큰 인물이 될 사람에게는 " 그 배를 굶주리게 하고 그 뼈를 아프게 하여 그 사람이 그 시련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기국과 역량이 있는지를 시험하나니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만났거든 내가 혹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가 아닌지 돌아보아라"라는 말이 있는데요 상당히 위로되는 말인 것 같아요.
인문학이란 한 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지영샘: "인간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세요?"
광규님: "그걸 알면 여기에 왔겠어요?"
지영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잖아요.
나와 다른 사람과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과 공존하고 접점을 찾아간다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여자를 볼 때 어디를 제일 많이 보세요?"
광규님: "저는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외모 좀 봅니다."
지영샘: 고대 그리스 플라톤의 철학 책 대화편 <향연>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에서는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자신에게 가장 결핍된 것에 갈망을 가지고 있다."
광규님: "아! 이렇게 뒤통수치는구나" 아아아 저는 마음씨를 봅니다. 그 사람의 인성 그리고 뭐 어른들한테
잘하는지 예의범절, 그리고 뭐 제사 지내면 싫어한다고 그러는데 제사도 지내줬으면 좋겠고
그냥 마음씨 본다 그럴걸,................
지영샘: 그런데 첫인상도 중요하고 마음씨도 중요하고 제사도 지내야 되고 ,.......................
광규님: "예~~~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문득문득 이렇게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1년에 한 번쯤 모여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또 좋은 음식 마련해서 같이
식구들과 모여서 밥 한 끼 먹는 게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영샘: 그 유고의 창시자인 공자님도 결국은 이렇게 말씀 시시는 거예요.
"죽은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녀가 해야 될 도리가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어떤 제자가 찾아와서 공자 한데 물어요? "선생님 귀신이라는 게 있습니까?"
우리가 제사를 지내고 3년상을 치르면 신이 그걸 듣고 좋아하는 겁니까?
그랬더니 공자가 했던 대답이 있어요 " 너는 인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너는 어찌 인간도 아직 모르면서 귀신을 궁금해하느냐? 인간을 먼저 공부해라"
선생님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저는 죽음이 너무 두렵습니다.
공자가 이야기합니다.
"너는 아직 삶도 잘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궁금해하느냐? 먼저 잘 살아라"
공자는 실존 인물이다.
공자는 B.C5세기에 산둥성 산둥반도 니구산 근처에서 실존하셨던 분이에요. 어린 시절 엄청 불우했어요.
키가 2미터가 넘는 아버지인 숙량흘이 70세에 15살 정도의 안징재라는 여자를 만나 공자를 낳았어요.
그래서 사마천의 <사기>라는 역사서를 보면 "숙량흘과 안징재가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라고 합니다.
[들판 야 자에, 합하다 합] 게다가 공자의 아버지는 이미 다른 부인이 있섰어요. 바람피워서 공자를 낳고
공자를 버려뒀어요. 그러니 공자는 어릴 때부터 미혼모의 어머니를 쫓아다니면서 정말 가난하게 살아요.
정말 가난하게 살면서 그 삶의 철학들을 깨달아서 수 천명의 제자를 거느리게 됐다고 보시면 돼요
석가모니
석가모니는 원래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본명이 있어요. 석가모니라는 것은 중국식으로 부른 거예요.
원래 중국인들이 뭐 이를테면 미국 이름 앤더슨을 [안덕삼] 이렇게 한자로 바꿔서 부르는 거랑 비슷한 거죠.
석가족의 우두머리인데, 원래 석가모니가 왕자였어요. 그래서 정치를 물려받아야 되는데 석가모니는 어릴 때부터
"인생이란 뭐지?, 왜 이렇게 사람들은 고통스럽지?, 이 고통의 원인은 뭐지?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지?"
너무 궁금했던 거예요. 그래서 왕위계승은 전혀 관심이 없고 자꾸 뛰쳐 나가려고 하니까 자꾸 나가서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니까 그 아버지가 이 석가모니를 도망가지 못하게 이웃나라에 가장 아름다운 공주랑 결혼을 시켜요
그래서 석가모니가 그래서 바로 나가지 못하고 1년만 살아보려고 너무 예쁘니까, 그런데 1년 후에 나가지 못했어요.
아들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석가모니가 그 아들 이름을 뭐라고 지었냐면 라홀라[인도어로 장애물]라고 지었어요.
아들에게 맡기고 나가야겠다 해서 깨달음을 얻은 게 바로 불교사상의 시작이에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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