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령 윤기도

by 나령윤기도 2022. 6. 17.
반응형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나령(那零), 본명은 윤기도(尹起道: 1966년 5월 5일생 ~ )이며, 어릴 적 이름은 철수였다.

아버지는 윤길훈(尹[吉]勳)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 성인애이다.

나령 윤기도

본시 평범한 가정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그다지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비록 성장 배경은 그리 순탄치는 못했으나, 어머님의 

공덕인지 아니면 조상님의 공덕인지는 정확히는 알 수는 

없으나 수많은 재난으로부터 생명을 유지해 오고 있.

높은 데서 떨어지고, 버스하고 부딪히고, 빙판길에 미끄러지고 ,

직접 자동차와 부딪쳐  나의 발등 위에 서는등 ,  수많은 위험들을 

모두 무사히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현실적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라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어련 풋이 생각이 나기 시작한 시기는 자그마한 시골학교에서 

급식을 먹으러 다니기 시작해서 자동으로 입학을 하게 되는 

시점부터 나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내가 태어난 자란 고향은 경남 창녕군 성산면 대산리 1117번지에서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이 어련 풋이

남는다. 아마도 내가 생각한 철수라는 아이는 무척 말썽꾸러기가 아니었나 짐작되어진다.

1971년 초등학교 입학, 1977년 중학교 입학, 1980년 고등학교 입학, 초등 6년, 중학 3년, 고등 3년 합이 12년 동안 

나는 가출을 6번을 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 정도라면 대충 어떠한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만할 것이다.

아마도 나는 청소년 사춘기라는 것도 잊은 채 성장을 한지도 모르겠다. 

어머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섰드라면 나는 현재 어떤 사람으로 존재했을까 가끔 회상을 하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전에 나는 어느 직업학교에서 추천장이 날아왔다. 울산 직업훈련원 현재 [폴리텍대학대학]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좋은 전문직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1982년 11월25일~1983년 8월30일

전액 국비였으며, 장학금도 일부 지급 되었다. 내가 원했던 기술은 자동차정비분야 였다.

하지만 모든것이 빛나갔다. 기계조립이라는 말에 차량정비인줄만 알았다.

그래서 기계과를 선택했다. 바로 밀링공과 국가 기능사 밀링2급 자격증을 나는 그 다음해 1983년 8월 25일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1983년  9월10일 사회 첫발을 걷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했다.  첫 직장   대일기업사,  참 많이도 회사이름은 변했다.

대일기업사▶삼주기계▶대륙금속▶메티아 내가 기억하는 이름은 여기까지 지금은 무엇으로 변경 되었는지 

모르고 있다.  참 추억도 많았다. 호기심도 너무 많아 항상 상사와 부딧혔다. 설계팀과도 항상 경계 대상이었다.

그래서 인정도 받아 시급도 수시로 인상 시켜주었다. 

그때 만났던 수 많은 인연들을 지금은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올 11월이면 벌써 39년이라는 세월이다.

그때 내 나이 갖 고등학교 졸업을 했으니 18세, 그당시 직업훈련원 동기생 평균 나이 27세 ~ 33세 까지 다양했섰다.

그러고 보니 내 또래 외 형님들의 나이가 지금은 모두 60세를 모두 넘을 연세가 되었다.

그리고 회사 동료 누님 새댁들의 연륜도 이미 할머니가 되어 있을 연세이시니 어찌 만날 수 있을까 . 

그리고 기억이나 하실련지 모르겠다. 

아뭍튼 내가 군 복무를 하기전까지 1983년 9월10~ 1987년 8월30일 까지는 정말 생애 최고의 시간들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강두수형님, 강홍수과장님, 권명수형님, 김성진큰형님, 남기회형님, 

 

 

................... 계속

반응형